2009년 4월 29일 수요일

사월의 비

 

 박판식

 

 사월의 비는 내면으로부터 온다

 전축과 독서용 책상,

 먼지 묻은 책상 위의 사과알을 빛나게 닦아두고 누우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가망 없는 욕망이 꿈틀거린다

 주인 아주머니는 내 사는 방에 살았던 사람들이

 이사가며 버리고 간 신발들을 모아 두었다

 낡고 닳은 신발들은 가벼운 영혼들처럼 뒤엉켜 있다

 사월의 비는 기억의 범람으로부터 온다

 이곳에 먼저 살았던 사람들은 내게 어떤 삶을 암시하

는가

 비는 손으로 끄집어내듯 내 속을 속속들이 드러내놓는다

 나를 둘러싸고 달려들어

 내 피부와 혈관의 온기마저 빼앗아 달아나버린다

 나는 불 꺼진 난로처럼 움츠러들어 벽과 천장에 도금

된 가죽 냄새를 맡는다

 흘러넘치는 법 없이 나를 싸고도는 사월의 비

 두 손에 감씨여진 차가운 얼굴의 감촉을 느끼며 나는

 사과 형체보다 거대한 원형의 향기 속에서 눈을 감

는다

 

 

 

시작시인선<밤의 피치카토> 35-36p

 

 

 

 

육안의 풍경은 메마른 체 어지럽고 불투명하다

일교차 말고도 감정의 진폭 역시 커지는 사월,

 

드디어

 

기다린 비가 온다, 겨우내 목말랐던 모든 내면들이

비를 맞기위해 속속들이 드러난다.

 

소리와 풍경이 닿는 곳마다

기억들이 범람하고 있다.

 

 

 

20090415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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