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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y safe tonight
2010년 11월 26일 금요일
2009년 8월 27일 목요일
.그랜저로

아래 글은 모임 별이
월간지 harper's bazaar korea에
boys' voice 혹은 boys' eyes라는 제목으로
연재중인 칼럼의 2009년 5월 원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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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ys' eyes
조용필과 장기하
많이들 그렇듯이 저도 십대 학창시절에 첫 밴드를 만들었습니다.
사실 말이 밴드이지 기타 약간 칠 줄 아는 녀석과
피아노 교습 약간이나마 받아 본 녀석 두셋 모이고
거기에 친하다는 이유로 아무나 다 붙어서
어머니 외출하시고 비어있는 집에 모여앉아
어설픈 코드의 통기타 반주에 헤비메탈 고성방가 수준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아방가르드(?)한 음악 수준에도 불구하고
멤버들이 가장 피를 토하며 격론을 벌이던 사안이 있었으니
결코 음악적 방향이나 보컬, 작곡 주도권에 대한 경쟁이 아닌 '밴드명 짓기'였습니다.
남녀공학이던 중학교 시절의 밴드는 당시의 분위기 때문에라도
음악적 형태는 당연히, 오로지 ROCK이었고
이름도 여자아이들에게 진정한 반항과 퇴폐를 보여줌으로써 강하게 어필하겠다는 의도로
'EX MACHINE'이었습니다.
엑스머신은 섹스머신의 준말로 친한 친구 몇몇들에게만
어쩔 수 없다는듯 작명의도를 알려줌으로써
학교내 여자아이들 사이에 '걔들이 진짜 멋진 애들이래'라는 소문이 암암리에 퍼지기를 바랬습니다.
일종의 신비주의와 노이즈마케팅이 결합된 형태였는데
불행하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자작곡은 물론 연주력 하나 없는 밴드는
아무런 소문도 일으키지 못했고 남자친구놈들 앞에서조차 공연 한번 못한채
음악적 이견(?)을 빌미로 해체되어버렸습니다.
조금 정신을 차리게 된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만든 밴드는 그나마 조금 상황이 좋았습니다.
일단 불필요할 정도의 이름 짓기 주도권 다툼이나
여자아이들에게 잘보이려는 출혈경쟁은 줄었으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그냥 독서실 책상 위에 간식으로 놓여있던 쵸코바 이름인 '스니커즈'로 지은 건
지금 생각해도 좀 너무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나름 익스트림 하드코어 밴드였던 '엑스머신'출신이었는데 말입니다.
당시 저희는 몇달동안 용돈을 탈탈 털어모아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이면
함께 당시의 유명밴드들이 연습을 하던 연습스튜디오 한켠을 얻어서 말마따나 생쇼를 하곤 했습니다.
스튜디오 주인도 저희가 한심하고 불쌍해보였던지
마치 노래방 서비스처럼 한두시간씩을 서비스로 추가해주곤 했었는데
당시 그 곳에서 봄여름가을겨울이나 신해철 같은 사람들을 보고 놀라 벌벌 떨던 기억이 납니다.
모두 함께 좋은 학교에 진학해서 멋지게 음악을 해보자던 꿈과 다짐은
2군 선수까지 포함한 밴드멤버 7명중 무려 5명의 '당연한' 대입실패와
그중 3명의 재수를 넘은 삼수생활(저를 포함)로 인해 자연스럽게 유야무야되어버렸습니다.
좌절에 빠져 머리도 수염도 깎지 않고 노량진의 학원을 기계적으로 오가던 재수 시절 만난
전설의 15수생 박형(처음엔 형이 아니라 학원동기라고 강조하더군요)은
함께 도시락을 까먹으며 제게 진정한 음악인의 길에 대해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이야기들을 들려주곤 했습니다.
"내 어린 시절 부산 살때 조용필이가 목청을 틔우려고 섬 해변가 바위 위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노래하는걸 보았제. 저러다 사람이 죽겠다 싶더라고.
마 그 정도 노력은 있으야 시대를 대표하는 뮤쥐션이 될 수 있는거이쥐.
마 내 볼때 니는 애시당초 눈빛에 불타는 예술혼이 없다 아이가. 글렀다 글렀어."
아아. 시대를 대표하는 뮤지션은 고사하고
대한민국에 돌보다 더 많다는 그 흔하디 흔한 대학생 한번 되어보고 싶었던 나날이었습니다.
이후엔 얼마전 이 지면에서 말씀드린 적 있듯이
여러 우연과 운명의 교차를 통해 '인디밴드'로 분류 혹은 규정되는 그룹사운드를 만들어
지금까지 음악작업을 이어오게 되었고
여전히 '진정한 뮤지션' 혹은 '시대를 대표하는 뮤지션'을 향한 길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몇년전쯤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과
오랫만에 재회하여 술잔을 기울일 기회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답했다" 따위의 민망한 광고카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겠다 싶을 정도로 참 난감한 자리였습니다.
함께 기타를 타고 달리던 시절의 죽마고우 놀이를 기대했던 제가 무척 순진했더군요.
그중 절반이 같은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녀석들은
온갖 회사내 암투상황과 정보를 교환하며 뻐기기에 바빴고
한참이 지나서야 "근데 넌 요즘 뭐하냐"라고 물었습니다.
어린시절 친구들의 예상 밖 힘자랑 수컷놀이에 당황한 저는
"어~ 나 인디밴드해. 음반도 몇개나 냈어. 멋지지 않냐."라고 어물쩍하게 답했습니다.
정말 약 30초가 넘도록 녀석들은 말 없이 술잔만 비우더군요.
마치 제가 처자식 다 버리고 출가라도 했다 생각하는듯 싶었습니다.
어색하던 분위기는 누군가가 자기 아내의 새 부업과
시험관임신 이야기로 화제를 바꿔버리고 나서야 풀렸습니다.
2009년인 지금 1-2년 전과는 사뭇 다른 재미있는 현상을 경험하고 있는데 말씀드려 보자면,
대학시절부터 한결같이 "너 왜 괴상하고 좋지도 않은 음악 한다면서 시간 낭비하냐.
그 시간에 여자꼬시는데 도움되게 차라리 헬스를 해라."라고 충고하던 친구들이
"야 너도 인디밴드 맞지? 장교주님이랑 아냐?"라고 묻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장기하랑 모르는데...하지만 나도 장기하 팬이야."라고 답하면,
그 순간 친구는 "그래 너가 뭘 제대로 했겠냐. 너가 장교주님을 알리가 없지."라는 눈빛으로 피식 웃은 후
자신이 얼마나 인디음악과 영화들을 사랑하고 조예가 깊은지 누차 강조합니다.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자식들이 그렇게 행동할 땐 항상 이쁜 여자가 그 자리에 있더군요.)<
계속 음악도 하고, 유명한 회사 다니는 어린시절 친구들과도 멀어지지 않고,
철든 어른도 되고, 약간이나마 돈도 모으며 살 수 있는 방법은 도대체언제쯤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을런지요.
언제나 그랬듯 시대를 대표하는 뮤지션 같은 건 꿈도 꾸지 않습니다.
모두가 조용필, 박찬욱, 김연아가 될 수는 없을테니까요.
여전히 '별 일 없이 산다'는 장교주님은 방법을 알고 있을까요?
혹 독자여러분 주위에 무슨 장르이건 음악한다는 친구가 있으면
불러내서 낮술이라도 한잔 하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꿈을 품고 있는지 진지하게 한번 들어보고
솔직한 조언도 해주시면 어떨런지요.
정답이 있겠냐만 눈부신 오월엔
그런 이야기들을 안주삼아 마시는 술이 제맛이니까요.
+이 글과 이미지는 '모임 별(Byul.org)'의 조태상과 박창용이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2009년 8월 20일 목요일
2009년 8월 18일 화요일
김대중 대통령 서거

이제 시간을 놓고, 영면의 시간으로 가셨군요.
시름과 고통의 시간과도 작별입니다.
모든 걸 내려 놓으시고 영원의 안식으로 편히 쉬시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09년 8월 7일 금요일
ㅡ그레이의 초상
이제 오스카 와일드의 시간이다.
오스카 와일드
그는 1854년에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거의 120여년의 시간을 일찍 태어난 그를 알게 된 건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무렵의 시기일 뿐이다.
지난 5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다시 읽었고 서울엔 그대로 그렇게
아름답지 못한 시간을 보냈다. 아름다운 청춘의 모습은 그다지 조바심
내지 않았다. 도리언 그레이, 오스카 와일드만 생각났다.
"방 안에 들어섰을때
그들은 벽에 그들이
마지막으로 보았던,
경이로운 젊음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주인의 훌륭한
초상화가 그 모습대로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중에서
http://www.imdb.com/title/tt1235124/
2009년 8월 2일 일요일
씨네큐브
자 시간이 흐릅니다. 계절도 어쩔 수 없이 바뀌고 세월도 흘러가며 기억도 쌓여갑니다.
내게 수없이 가져다준 공간의 기억도 그렇게 흘러 갑니다.
씨네큐브가 문을 닫습니다. 아트하우스 모모가 있습니다만, 어찌됐든 흥국생명이라는 모기업의 지원을 업고 시작한 광화문 씨네큐브의 시대는, 그리고 이제 그 적자의 문제가 쌓여갈 수록 예술영화의
목마름도 함께 쌓여갔던 그 장소는, 혼자보는 영화의 미덕과 홀로 아닌 나날들과 함께했던 눈물들
그렇게 공간의 기억도 이젠 변해갑니다. 예술영화의 공간이 또 변하고 사라져 가는 현실의 지금은
착잡하다고 말합니다. 알기로는 모기업인 태광이 운영권을 넘겨받는 형식으로 예술영화 중심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 입니다.

2009년 7월 28일 화요일
Another "I'll Go Crazy........"
Now here's the second video for "I'll Go Crazy If I Don't Go Crazy Tonight," the
live version shot in Barcelona when the tour started.
*We've seen the David O'Reilly animated version